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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is Joplin
1943년 1월 19일, 전쟁이 한창인 괴물 같은 세상에 20세기의 마녀가 태어난다. 그녀의 이름은 제니스 조플린(Janis Lyn Joplin), 60년대의 피를 타고난 한 여자가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역사학자 T R 페렌바흐가 “2명의 훌륭한 의사나 유명 음악가 또는 상대성이론을 만든 사람을 배출한 가족보다 10만 에이커의 땅을 가진 가족을 더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평하고 오늘날의 조지 W. 부시를 만든 텍사스였다.
이렇게 반공의 매카시즘이 몰아치던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도 가장 보수적이었던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차별과 따돌림 속에서 살아야 했다. 개방적인 탓에 언제나 별난 아이로 취급받기 일쑤였고 전통적인 예술과 문학을 거부하며 포크, 재즈, 블루스에 심취했던 소녀 시절의 조플린은 동료들로부터도 냉대 받았다. 더군다나 못생긴 그녀의 외모 탓에 사람들은 그녀를 더욱더 멀리 했고 그녀는 그런 세상에 대한 반항심을 가진채 이제 60년대를 맞이한다.
1960년대는 18세기 후반, 19세기 중반과 함께 항상 소외되어 있던 약자들이 사회를 이끌어 간 세계사적으로 몇 안 되는 시기일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주도로 50년대부터 시작된 흑인 민권 운동은 절정을 맞이하였고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촉발된 반전 ․ 평화 시위도 극에 달해 수많은 미국의 청년들은 징집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다했다. 또한 히피 문화가 창궐하고 페미니즘이 등장했으며 옛 미주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68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68 운동’은 미국, 독일 등지로 퍼져 나가 기업, 정부, 학교, 의료 산업 등 기성세력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에 불을 지피며 60년대는 그 절정을 맞이한다.
1968년의 파리, photo by Bruno Barbey
이런 저항 문화의 중심에는 락 음악이 있었다. 밥 딜런이 반전을 노래하고, 백인들과 같은 자리에서 밥도 먹지 못하던 흑인(Jimmy Hendrix)이 몇 만 관중이 운집한 무대(Woodstock)의 중심에서 기타를 연주했고, 인종을 불문한 열정적인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그 60년대에 Janis Joplin이 있었다.
60년대의 저항적 분위기를 등에 업고 락음악은 절정에 오른다. 흔히 락음악의 저항정신의 시초를 논할 때 언급되는 3명의 J가 있다. The doors의 보컬 Jim Morrison, Jimmi Hendrix 그리고 바로 Janis Joplin이다. (셋 모두 약물을 복용하였고 요절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명의 백인, 한 명의 흑인 그리고 한 명의 여성이다. ‘흑인’과 ‘여성’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그들은 ‘저항’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바로 그 ‘저항’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일부 논자들에게 락음악의 핵심으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Janis Joplin은 아마 최초의 여성 락커일 것이다.
3J, Janis Joplin, Jimmy Hendrix, Jim Morrison
Janis Joplin은 무엇 하나 평범하거나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는 프리섹스주의자였고, 늘 술과 약물에 절어 있었다 ― 그녀는 결국 약물 과다 복용으로 27살의 나이에 LA의 한 호텔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녀의 옷차림은 늘 지저분했고 그녀의 머리는 늘 산발이었다. 그녀의 삶은 많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모범’으로부터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었고 ‘평범’과도 거리가 멀었다. 말 그대로 그녀는 괴물 같은 사회에 대해 온 몸으로 저항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락 음악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여성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단지 그녀의 저항적인 삶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누구도 접하지 못한 폭발력을 가지고 노래했고 무대 위를휘어 잡았다. 그녀는 노래했다기보다 음을 폭발시켰다. 거친 목소리와 정신 없는 무대 위의 퍼포먼스는 말고 청량한, 소위 말하는 여성스러운 음색에 익숙한 청자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년 1960년대 말 ‘블루스 리바이벌’ 시대의 중심이었고 백인으로서 흑인의 음악인 블루스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블루 아이드 블루스(blue eyed blues)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그녀의 첫 번째 밴드,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와 함께
기대할 것도 희망도 없던 더러운 삶에서 그녀의 유일한 위안거리가 바로 음악이었다. 그녀는 TIME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노래할 땐 마치 아주 강한 약을 먹은 듯한 기분이 된다.”고 털어 놓았는데 노래를 할 때가 아마 그녀가 약물에 의지하지 않고도 삶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165명이 탄 기차에서 65명하고 밖에 잠자리를 갖지 못했다고 투덜대던 그녀가 그녀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엎는다. 밴드의 일원으로서 존재하던 그녀는 이제 자신의 백밴드를 만들고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헤로인을 끊고 세스 모건이란 대학생과 사랑에 빠지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릴 꿈도 꾸게 된다. 그동안 음을 폭발만 시키던 음악에서 벗어나 발라드를 시도하고 소울을 시도하면서 그녀의 음악은 절정에 달하고 그 결과물이 바로 전무후무한 불후의 명반 'Pearl'이다. 그러나 그녀는 앨범을 녹음하는 과정에서 다시 약물을 손에 대게 되고 결국 결혼을 얼마 앞둔 1970년 10월 4일 LA의 한 호텔에서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한다.
그녀가 남긴 불후의 명반, Pearl
*Discograhpy
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
- 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 mainstream, 1968
Cheap Thrills
- 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 columbia, 1968
I Got Dem oL' Kozmic Blues Again Mama
- kozmic blues band, clumbia, 1969
Pearl
- full tilt boogie band, columbia, 1971
'Cry Baby', live in Toronto, 1970
'Me and Bobby Mc Gee'
그녀의 공식 홈페이지 : http://www.officialja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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