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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아메리카>
<아메리카>는 내가 세 번째로 접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이다. 처음 접했던 건 역시 <변신>이었고 두번째는 <성>이었다.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변신>과 배경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환상 속을 헤메는 것과 같은 느낌의 <성>은 어딘가 초현실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지만 <아메리카>는 그와 달리 아주 평범한 카를 로스만이라는 사내가, 아주 낯 익은 나라인 '아메리카'에서 맞는 상황들을 꽤나 현실적으로 그린다.
책의 줄거리 또한 매우 평범하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또 어쩌면 카프카 소설의 매력이리라. 카를 로스만이라는 사내는 연상의 하녀를 임신시켜 미국으로 추방당하고 미국에 온 카를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방황한다는 것이 책의 주된 줄거리이다.
흔히 <성>, <소송>과 함께 고독의 3부작으로 불리는 <아메리카>의 원제는 ‘Der Verschollene’ (영제 : 'The Man Who Disappeard' ), 번역하면 '실종자' 쯤 된다. 나는 이 책의 원제가 '실종자'로 번역된다는 것을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알았고 더불어 이 책이 '산업화에 따른 인간 소외' 혹은 '현대 사회의 인간 실존의 문제' 등과 같은 진부한 언어로 해석된다는 것도 책을 덮은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아메리카>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이 책이 '고독의 3부작' 중의 하나라는 것 뿐이었고, 나는 책을 읽으며 이 책이 '현대 사회'니, '산업화'니 '인간 실존의 문제'니 하는 거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마 이 글은 왜 내가 전형적인 <아메리카>의 해석대로 책을 읽을 수 없었는지에 대한 것으로 책을 돌아보는 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소설 <아메리카>에 대한 사후적 해석이다.
<아메리카>는 왜 평범한 이야기가 되었나?
나에게 있어서 <아메리카>는 단순히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젊은이의 모습을 그린 소설 정도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아메리카>에 묘사된 상황은 낯선 땅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 중의 하나였다. 미국 땅에 가서 세탁소를 한다던가, 식당에서 잡일을 한다던가 하여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위해 고초를 겪었다는 수많은 '아메리칸 드림'들을 떠올리며. 주인공 카를 로스만은 또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분투하는 이 땅의 평범한 젊은이들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이런 식의 해석은 아마 '그래, 좋은 직장을 얻는 게 쉬운 건 아니지' 정도가 될 것이다.
낯선 땅에 홀로 서서 때로는 낯선 이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긴 하지만 당장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 수는 없다. 그래서 일단 아무 일자리나 얻어 보지만 일은 고되고 상관의 부당한 대우에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소설 속에 묘사된 이러한 상황들은 사실 지극히 평범한 이민자들의 모습이고 지극히 일상적인 직장의 모습이다. 내가 본 소설 속의 '미국'이란 사회는 단지 이처럼 평범한 사회일 뿐이었다.
이처럼 카를 로스만의 삶이 나에게 지극히 평범하게 다가왔던 것은 아마 <성>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음산함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모순적인 상황에 부닥치며 의문을 품었던 <성>의 주인공 'K'와 달리 <아메리카>의 주인공 카를 로스만은 그 모순에 토를 달지 않고 삶을 살아낸다. '뭐 어때, 그냥 하면되지'라는 것이 부닥치는 상황들을 이겨내는 카를 로스만의 방식이다. 밤새 잠도 못자고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호텔 엘리베이터 보이 일을 하면서도 카를은 '그래도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는 동료였던 들라마르샤에게 하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당장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 기꺼이 일을 감내한다. 그러니까 소설 속 카를의 삶이 그렇게 평범하게 보였던 것은 그가 삶의 모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부조리한 삶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현대 산업사회
소설 <아메리카>가 '현대사회'니, '산업화'니, '인간 실존'이니 하는 거대한 이야기들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이처럼 카를 로스만의 삶의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깐 눈을 깜박여보자.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이 곳은 과연 어디인가? 내가 평범하다고 느낀 삶의 터전들, 내가 일상적이라고 느낀 생활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 곳은 바로 현대 산업사회다. 우리가 사는 이 '현대 산업사회'는 거대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하며 때로는 초라하기까지 하다. 모순은 바로 이 부분에 존재한다. 거대한 곳에서의 삶이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라는 모순.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로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을 내민다. 빨간약을 먹으면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이고 파란약을 먹으면 모든 걸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네로는 빨간약을 먹고 결국 평범하다고 느꼈던 세상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현대 산업사회'란 곳의 속성을. 그곳은 언제나 분주하여 삶의 여유을 거세당한 삭막한 인간들의 세상이다. 그곳은 모순을 당연한 이치로 받아 들여야하며 '나'를 잃은 삶을 살아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잊고 산다. 우리들 스스로가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이곳이 바로 그 '현대 산업사회'라는 것을. '현대 산업사회'를 보며 부조리를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삶이 부조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아메리카>는 일종의 '빨간약'이었다. 내가 사는 이 평범한 곳이 교과서에서나 보던, 뉴스에서나 듣던 그 거대한 현대 산업사회라는 것을 알려준 빨간약. 이 부분에서 <아메리카>는 주인공 카를 로스만이 주체성을 상실하고 어떻게 해서든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과는 별개로 나에게 또다른 실존의 문제를 제기해 준 셈이다. '너는 니가 사는 곳의 존재를 아느냐(혹은 인지하느냐)?' 이것은 로스만이 "나는 내가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될 내 업무와 사무실의 이기만을 염두에 두고 어떤 요구에도 복종하리라"고 말하며 아무 주체적 계획 없이 그저 눈 앞에 닥치는대로 삶을 살아내는 것과는 또다른 실존의 문제이다. 그래서 이 책은 첫째로 카를 로스만의 삶을 통해 내용적으로 실존의 문제를 제기하고 또한 부조리한 삶이 부조리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나를 자각하게 함으로써 사후적으로 다시 한 번 실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후의 작업은 역시, 다시 '일상적'이라고 하는 이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던 지금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말이다. 잃어버리 실존 혹은 주체를 찾는 작업은 바로 주체를 상실했다는 자각, 실존에 대한 물음,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름은?
그는 서기에게 다가가 감사하다는 표시를 하려 했다. 그때 그가 이름을 물었다. 카를은 당황했다.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본명이 기록에 남는 것에 공포 비슷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선 아무리 하찮은 자리라도 괜찮으니 일자리를 얻어 만족스럽게 직책을 수행한 다음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꽤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젠 본명을 밝히려 해도 밝힐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는 갑자기 딴 이름이 생각나지 않기에 최근의 직장에서 불리던 이름을 쓰기로 했다.
"니그로라 합니다."
마지막 장에서 카를은 자신의 이름을 '니그로'라고 밝힌다. "아니, 니그로라니?"라고 되물어도 그는 "니그로."라고 중얼거리고, "자네, 설마 니그로라고 기입하진 않았겠지?"라고 물어도 그는 "아닙니다. 니그로라고 기입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채용되었음을 알리는 게시판에는 '니그로, 기술노동자'라는 글귀가 게시된다. 이후의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지만 아마 그는 '니그로, 기술노동자'로 채용되어 당분간은 별 탈 없이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카를 로스만'이 아니라 '니그로'가 되었다 해도 그의 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카를 로스만은 사라졌다. 아무 이상할 것도 없이 카를 로스만은.... 그렇게 실종된 것이다.
그럼..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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