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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데이비드 K. 쉬플러 (후마니타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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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홈페이지(http://www.humanitasbook.co.kr/)를 통해 서평단을 모집했었다. 이 책과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두 권이었다. 간단하게 댓글로 신청하는 사유를 적는 것이 신청 방법이었는데 나는 두 책 모두 지원했었고, 이 책 한권만 선정이 되었다. 서평단에 선정되면 출판사 측에서 책을 무료로 보내주고, 선정된 사람은 해당하는 도서의 서평을 홈페이지에 올려야 한다. 그러니까 사실 이 글은 이곳이 아닌 후마니타스 홈페이지에 올려야 하는 건데, 우선 여기에 초벌을 쓴 뒤 조금 다듬어서 올리려고 한다.


책이 택배로 왔기 때문에 포장을 뜯고 처음 책을 쥐었을 때 나는 책의 두께에 조금 놀랐다. "저자 개인이 참여 관찰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라면서? 근데 이렇게 두꺼워?" 이 책은 총 548쪽에 달하는 짧지만은 않은 책이다. 저자는 500쪽이 넘는 이 책의 분량을 그가 '보이지 않는 미국인들'이라고 지칭한 워킹 푸어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처음 제목만을 접했을 때는 한 학자가 노동과 소득이 비례하지 못하는 현실을 경제학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간략한 소개를 읽어 보니 이 책은 한 학자의 냉철한 학문적 분석을 담은 것이 아니라, 한 저널리스트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워킹 푸어들과 함께 부대끼며 관찰하고 기록한 진짜 '현실'을 담은 것이었다. 그런 결과물이 500쪽이 넘는 분량으로 나왔다. 저자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관찰한 사람들만 족히 스무 명은 넘는 듯 싶다(일일히 세어 보지는 않았다). 저자는 단지 빈곤의 경계에 있는 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이 책에 옮긴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작의 삶, 나아가 그들 가족의 삶 자체를 함께 하면서 이들을 관찰했다. 그것도 몇 번의 접촉이 아니라 몇 년 간의 꾸준한 소통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는 온갖 상처로 점철된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그들의 입에서 직접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자가 얼마 만큼의 진정성을 가지고 얼마나 당사자들에게 가까이 접근했는지를 알 수 있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저자가 이끌어낸 결론을 떠나서 이처럼 치열한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세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칭찬할 만하다.

저자가 만나고 관찰한 이들은 극도의 빈곤에 허덕이는 자들은 아니다(반전이라면 반전이다). 가난, 빈곤과 같은 단어들을 들으면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의 배만 볼록한 비쩍 마른 아이들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극빈곤층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저자의 관심 대상은 아니다. 저자가 관심을 두고 있는 자들은 오히려 '빈곤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정한 빈곤선의 위아래를 넘나드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때로는 빈곤층이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또 때로는 그렇지 않게도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빈곤이란 단어를 통해 쉽게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떠올릴 수 있듯이 명백하게 빈곤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는 '잘 보인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빈곤선을 정하면 그 아래에 위치한 자들이 파악되는 것이다. 정부의 혜택은 그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저자가 빈곤선 아래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빈곤선의 경계에 있는 자들에 관심을 둔 까닭은 빈곤과 빈곤 아닌 것의 경계라는 것이 이처럼 무 베듯이 딱 잘라 나누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실생활에서 빈곤은 일련의 구획이 없는 영역이며, 사회가 통상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궁핍 상태를 의미한다."(p. 11) 어떠한 기준에 의해, 그것도 명확하지 않은 기준에 의해 분명하게 정해진 빈곤선은 그보다 아주 약간 위에 위치하고 있을 뿐인 ─ 그러나 빈곤에 시달리는 ─ 자들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이들은 정부의 혜택을 받기에는 부유하고,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살아가기엔 너무도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문제는 보이지 않기에 더욱더 해결되기 어렵다.

저자는 역설적으로 모두가 빈곤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아니라 애매모호하게 빈곤의 경계에 위치한 자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실질적으로는 얼마나 빈곤에 무관심했는지를, 정부의 복지라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를 낱낱이 까빨리는 것이다.

저자는 워킹 푸어들의 실제 삶을 파고들면서 실제 현실에서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자들의 의지를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들을 보여 준다. 임금격차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구조, 세계화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통합된 시장과 노동, 불완전한 복지 정책, 관료주의의 폐해와 관료들의 무능과 같은 구조적 차원의 문제 뿐만 아니라 개별 워킹 푸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의지의 문제,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 등 개인적 결함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실제로 빈곤은 개인과 구조과 마치 날실과 씨실처럼 얽혀 들어가면서 한 개인을, 한 가정을 헤어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의 순환 속으로 몰아간다. 풍부한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빈곤이 오로지 체제와 제도의 문제도 아니며, 빈곤에 시달리는 한 개인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빈곤은 한 개인에게서 그치지 않으며 그들의 가정으로, 그들의 다음 세대로까지 전이된다. 그들은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지만 그러한 몸놀림은 그저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것처럼 공허할 따름이다.

저자는 열심히 삶의 끈을 이어가고자 하는 자들을 가로막는 다양한 제도적, 구조적 문제들을 지적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애초에 일할 의지조차 갖지 못하고 마약과 범죄에 휘말리는 개인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개인들은 '과연 일하고자 하는 아무런 의지가 없는 자들에게까지도 복지 혜택이 주어져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하기에 충분하지만 저자는 그 너머를 바라 본다. 일할 의지조차 앗아가는 환경, 대물림되는 가난으로 인해 박탈당한 자존감, 부모로부터의 학대로 인해 불신을 품게 된 아이들, 남편으로부터의 폭력으로 인간을 경계하게 된 아내들. 그들은 자신이 "좋은 물건을 훔칠 자격"(p. 270)도 안 된다고 여길 만큼 크나큰 자기 비하의 늪에 빠져 있다. 그들은 '소외'를 느끼며 일을 가졌을 때조차 자신들을 거대한 공정의 '일부'로만 느낀다. 그러한 그들은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여기게 되고 자신들이 어쩌다가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여긴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그들은 다시 실직 상태로 내몰리고 빈곤은 되풀이된다. "자신에 대한 존중과 가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공백이 생기고 마치 진공상태의 공간에 공기가 빨려 들어가듯 무서운 속도로 술과 마약이 그 자리를 채우곤 한다."(p. 271)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환경과 사건들로 인해 삶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들을 과연 나무라기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은 저자의 관점은 빈곤을 체제와 구조의 문제로만 돌리는 진보와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는 보수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이다. 빈곤이라는 것은 그 원인을 오직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체제의 착취와 개인의 무책임 중 어느 한쪽이 책임을"(p. 510)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책의 막바지로 가면서 9장 <꿈>, 10장 <열심히 일하면 해낼 수 있다>를 통해 희망을 심어 주려고 한다. 꿈을 가지고 좋은 환경과 좋은 프로그램들을 만나 열심히 노력하는 자들이 삶의 가치들을 발견하는 사례들을 제시해 준다. 저자가 희망적으로 제시하는 사례들은 앞에서 제시된 비극적 상황에 놓인 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 위차하면서도 결국 온갖 장애들을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가족을 통해, 혹은 종교를 통해 그러한 희망의 씨앗을 키운다. 그들은 적절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적절한 복지 프로그램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의 사례는 앞에서 제시된 사례들과 일견 철저히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앞의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 것들을 다시 뒤엎는 듯한 느낌도 든다. 같은 나라 안에서,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으면서도 성공을 예비하는 자들이 존재한다면 결국 저자가 그토록 치열하게 관찰하며 제시한 사례들이 보여주는 문제는 무엇이 되는가? 도루묵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의지를 갖고 희망을 찾는 자들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될 위험성을 안고 있지는 않을까? 워킹 푸어들의 문제를 그들 각자의 결함으로 인한 것으로 몰고갈 우려가 있지는 않을까?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제가 무엇이든 간에 모두 여러분 마음 먹기에 달렸어요!"라고 말하는 자기계발서 말이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기라도 한듯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다양한 제도적 결함들 ─ 예를 들면 의료보험 같은 ─ 을 다시 한 번 지적하기도 하고, 대안적 정책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워킹 푸어들을 구제할 능력은 있지만 의지가 없는 게으른 정치가와 관료들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부분도 역시 지나치게 제도의 문제와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정치가나 관료들의 문제에만 집중하면서 더욱 큰 흐름 같은 것을 놓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예건대, 저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다. 


미합중국에는 불편한 사실을 직시하고 개선을 위해 이를 예민하게 조정하는 메커니즘이 있다. 우리들은 인종차별, 환경오염, 기업의 위법행위, 방향성을 잃은 대외 정책, 경찰에 의한 학대 행위, 국내의 빈곤 문제에 대해 이 메커니즘을 작동시켜 왔다. 여전히 이들 해악은 우리 사회에 남아 있지만, 반세기 전과 비교했을 때 그중 상당 부분이 개선되어 온 것은 사실이며, 이는 우리가 이룩해 낸 성과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무엇인지 시사한다. (p. 510)


저자는 이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의 '메커니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저자가 간과한 것은 그러한 '메커니즘'을 모두 개인에게 떠넘겨 버린 80년대 이후의 흐름들이다. 어떠한 이론 혹은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장악하였으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메커니즘'의 작동 방식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를 테면, 레이건 이후 강화된 '노동 유연성'에 대한 강조는 일하는 노동자들을 빈곤하게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지속적으로 삭감된 복지 예산도 이러한 흐름들에서 예외일 수 없다. 저자는 철저히 진보와 보수의 극단을 피하고 문제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책을 완성했다. 그러나 분명 현실 세계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이며 그 이데올로기는 거대한 듯 보여도 우리들 각자의 삶 속을 이미 파고들 정도 세밀한 면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한계는 저자가 문제를 아래로부터 바라본 데에서 기인할 것이다. '아래'라는 것은 저자가 기록한 실제 삶이다. 저자는 다양한 삶들을 가까이에서 직접 관찰하면서 아래로부터 문제를 끌어올렸다. 이러한 태도는 사실 매우 중요하다. 실제 세계와 맞부닥치지 않은 채로 제기하는 문제들과 대안은 공허한 외침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거인의 어깨에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여유와 관조였다. 끊임 없이 치열하게 삶을 다투는 자들을 '여유롭게 관조'한다는 것이 부도덕한 일일지도 모르나, 그러한 태도로부터 오는 더 넓은 범위의 시야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 7점
데이비드 K. 쉬플러 지음, 나일등 옮김/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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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09/12/12 01:19
우오, 역시 쉐부랑코님.... 놀라운 서평이네요.
wrote at 2009/12/12 07:45
하하;; 과찬이십니다...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ㅋㅋ
wrote at 2009/12/19 16:23
아닌게 아니라, 이 서평을 읽고 났더니 이 책을 냉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wrote at 2009/12/20 18:01
전 사실 그렇게 감명 깊게 읽지는 않았지만;
책에 나타난 실상들 보면 참 갑갑하긴 해요.
그런 실상들을 그렇게 낱낱이 기록한 것도 참 대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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