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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오랜만에 휴가를 나갔는데 좁은 방을 비집고 웬 전자드럼 세트가 떡하니 있었다. 아니, 대체 이게 뭐냐고 그랬더니 아빠가 드럼을 다시 배우고 계시단다. 몇 년 전부터 다시 하겠다고 잔뜩 바람이 드셔서는 설레발을 좀 치시더니 기어이 학원 등록하고 아예 전자 드럼 세트를 사 버리셨다. 아파트에서 이걸 어떻게 치려고 샀냐 그랬더니 앰프 소리 좀 죽이고 치면 괜찮단다.
아빠는 대학교 때 밴드를 했었다. 아빠가 대학에 들어가신 게 70년대 후반 무렵이니까 한창 대학내 그룹사운드 열풍이 불기 시작할 무렵이다. 77년도에 MBC 대학가요제 첫 회가 열리고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가 대박을 친다. 당시에 '나 어떡해'가 뜨는 걸 보고 개나 소나 '나도 할 수 있겠다'고 했었다고 한다. '나 어떡해'는 재미있게도 대학 밴드들에게 '저 정도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하는 자신감과 희망을 안겨준 곡이다. 아마 우리 아빠도 당시 그 열풍에 동참하셔서 드럼을 치게 되신 게지. 확실히 옛날 대학이 훨씬 재미있지 않았나 싶다.
요즘도 대학 밴드들이야 넘쳐 나지만 사실 70, 80년대 밴드들이랑은 수준 비교가 안된다. 당시에는 따라할 밴드라고는 웬만해서는 메탈이었으니까 악기 처음 잡는 사람들이 한 달만 빡세게 연습해도 합주가 가능한 곡들 하는 요즘 밴드랑은 비교가 안된다. 요즘 밴드 했다 하는 사람들 한 1, 2년만 안쳐도 복귀 불가능할 정도로 실력이 망가지는 사람도 많은데 예전엔 저 정도였으니까 아빠도 30년이 지나서도 어느 정도 치는 게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옛날에 대학 축제에는 연예인들도 없었다. 아빠 얘기 들어 보면 여러 대학 축제 다니면서 공연하고 그러셨다는데 그러니까 사실 지금 밴드들보다 여건이 좋은 것도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열정 자체가 다르기도 했다. 물론 요즘 대학이 학점 경쟁, 스펙 경쟁이 전례 없이 살벌해진 탓이 크겠지만.
어쨋든 아빠가 대학교 때 드럼을 치셨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나도 따라서 드럼을 치고 싶었다. 그래서 난 중학교 때부터 제발 드럼학원에 보내달라고 엄마한테 생떼를 부렸었는데 엄마가 했던 핑계가 늘 이거였다. "아빠도 대학 때부터 했어." 그러면 뭐 난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엄마는 참.. 피아노는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시켰으면서. 대학 와서 엄마의 그 열정 덕을 좀 보긴 했다만, 아무튼 그랬다.
학원 다니신지 1년은 넘은 것 같기도 하다. 오지랖 넓으신 아빠는 또 대학 때 관악부도 했었는데 아버지가 나름 성대 관악부 창단 멤버시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공연 성대 관악부 공연 오라는 초대장이 날라 오고,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는 관악부 모임 같은 데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런 데 가면 나름 창단 멤버라고 엄청난 대접을 받곤 했던 기억이..
그러다가 드럼 학원 다니시면서 비슷한 나이 또래의 동문들이랑 다시 오케스트라 공연 준비를 하셨다. 아버지는 물론 퍼커션 주자. 매 주말마다 서울 어딘가에서 연습을 하시는데 오케스트라 공연도 한 번 하셨다. 나는 못 봤지만.
아무튼 이번에는 그냥 드럼 학원에서 연말을 맞이하여 학원생들 실력 뽐내라고 마련한 자리였다. 아빠가 다니는 드럼 학원이 주로 직장인들 대상이고 어린 애들도 몇 명 있다. 그래서 공연 곡들이 대부분 조용필 노래, 남진 노래, 불놀이야(홍서범 있던 밴드.. 이름 갑자기 기억 안난다) 뭐 이런 식이었다. 드럼 전문 학원이라서 기타, 베이스, 건반, 보컬은 학원 원장 아는 세션 불러다가 연주시킨다. 그러다 보니 합주 한 번 안하고 제각각 연습한 다음에 무대에 서는 거다. 세션들이야 프로들이니까 뭐 상관 없을 수도 있다만 어쨋든 합주 한 번 안하고 오르니까 좀 안 맞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아빠는 1부 끝무렵에 나왔는데 곡명이 "Wipe Out". 조용필, 남진, 이런 노래 나오다가 듣도보도 못한 곡이 나와서 좀 의아했다. 아무튼 그 곡을 치기 시작하는데 아빠가 너무 잘 쳐서 까무라칠 뻔 했다. 이런말 하면 좀 팔불출 같지만 이전에 연주한 다른 학원생들(다 4,50대 아줌마, 아저씨들)이랑은 솔직히 차원이 달랐다.
내가 한창 밴드할 때 아빠는 예전에 무슨 곡 했냐고 물어 보면 딥 퍼플, 퀸 이런 애들 이름 대기는 했었다. 자기가 뭐 대학 때는 1분 넘게 드럼 솔로도 하고 그랬다고.. 그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빠 드럼 치는 거 실제로 보고 놀랐다. 아빠 드럼 치는 거 본 게 두번째이긴 한데 첫번째로 봤을 때는 내가 어린 나이였고 이미 드럼 친지 오래됐을 때라 별로 기억에 남는 인상이 없다. 이번에는 거의 30년 만이긴 하지만 다시 드럼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거라 다르긴 달랐다.
사실 아빠 꿈이 가족 밴드 결성하는 거다. 아, 좀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동생은 기타 전공이고 나는 피아노를 좀 칠 줄 아니까 각이 좀 잡히긴 한다. 제대로 한 번 하긴 힘들겠지만 어디 껴서 몇 곡 하면 재미있기는 하겠다. 아빠가 학원을 내년까지 다니시면 내년 연말에는 아빠 드럼칠 때 세션 대신 우리가 연주 해줘도 괜찮을 듯 싶다. 베이스야 뭐 어디서 구하면 되겠지.
아무튼 공연은 전체적으로 무지하게 지루했다. 드럼이 중심이니까 보컬이고 다른 세션이고 다 얌전하게 공연하고 보는 사람들도 다 가족들이니까 그냥 약간 학예회 분위기(아빠 연주할 때는 그래도 환호 장난 아니었다).
아빠 공연 보기 전에 사실 '스쿨 오브 락'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음악이란 게 사람 사는 데 주는 활력이 장난이 아니란 걸 뼈저리게 느꼈다. 삶은 즐겁게 살아야 하고 음악이 즐겁게 하는 데는 아무튼 만만치 않은 기여를 하나 보다.
아래 영상은 아빠가 연주한 wipe out 원곡이다. The Surfaris의 곡이 원곡이고 The Ventures란 팀도 연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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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버지도 왕년에 밴드를 하셨는데
기타를 치셨거든요.
항상 제가 사둔 기타나 음향장비를...
저평가 하셨던...
저에게 있어 평론가셨습니다.
아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