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zed under 독서일기/서평 & written by 쉐부랑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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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을 참으로 오랜만에 쓴다. 그동안 참 읽는 것에 게을렀다. 외박을 나가서 두 권의 좋은 책을 공짜로 얻었다. 책이 책값을 하려면 우선은 책 자체가 담고 있는 내용이 좋아야겠지만, 그만큼 성실한 독자를 만나야 한다. 더군다나 이번처럼 책을 공짜로 얻은 경우에는 선물하신 고마운 분들이 기꺼이 포기한 그 책만큼의 소장 가치를 나의 성실한 독서로 채우는 것이 도리일 듯 싶다. 이제 다시 좀 성실해져 보려고 한다.
아, 이 책도 정연회 워크샵의 '책 나눔'을 통해서 '공짜로' 내 손에 들어온 책이다. 2년 전 나에게 이 책을 안겨준 사람이 누구인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 사람에게 꼭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좋은 책 주어서 참 고맙다. 그리고 그 정성을 몰라 보고 이제야 읽어서 미안하다.
조한혜정 교수에 대한 이야기로 서평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내가 책 나눔 행사에서 이 책을 선뜻 선택했던 것은 순전히 그녀의 이름 때문이었으니.
이 책은 내가 두번째로 접한 조한헤정 교수의 책이다. 첫번째 책은 『글읽기과 삶읽기 1』였다. 아직도 생생한 그 문화적 충격. 그것은 분명 대학생들의 이야기였고, 조한혜정 교수가 진행했던 수업에 관한 이야기였는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학생들이 이야기라는 것이 매일 매일 대학생으로서 수업을 듣는 나에게는 매우 이질적이고 낯설었다. 조한혜정 교수는 그만큼 '다른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또 그의 학생들이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조력하기도 하는 학자이자 선생이었다.
그러한 태도는 『경계에서 말한다』에서도 변함이 없다. 낡은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려는 시도. 그러나 『경계에서 말한다』를 읽은 뒤에는 충격 같은 건 받지 않았다. 이 책이 『글읽기와 삶읽기 1』에 비해 시시하고 식상했던 까닭이 아니라 그만큼 내가 새로운 것에 대한 마음의 경계를 늦추게 된 탓일 게다. '경계'라는 것, '경계심'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단절을 만들어내는 '벽'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경계에서 말한다'는 제목처럼 이 책은 그러한 국적과 언어의 차이를 넘어서는 두 여성학자의 월경담이다. 국적의 차이라는 것이, 언어의 차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두 여성학자는 단지 서신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서신들은 다시 또다른 벽을 허물기 위해 가족, 성, 역사, 세대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한다.
국가라느니, 성이라느니, 역사라느니 하는 주제들은 사실 매우 무거운 내용들이지만 이 책은 그러한 중압감을 가뿐하게 떨쳐 버린다. 조한혜정과 우에노 치즈코는 그러한 주제들을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개인사와 사회를 연결하고, 경험과 이론을 연결하면서) 능수능란하게 풀어낸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마치 어머니의, 혹은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이야기하면서 포스트 콜로니얼을 논하고,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면서 세대와 역사로 나아가며, '독신녀'라는 자신의 처지에서 새로운 가족 구성에 대한 발상을 내어놓는 그녀들의 재담에 나는 넋을 잃고 책을 읽어 나갔다. 그녀들은 단지 바깥에서 팔짱을 낀 채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그리고 그 사회를 현실 속에서 자신들의 삶과 연계하면서 진정한 사회과학자의 태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녀들이 전해주는 '옛이야기' 처럼 따뜻한 이야기들은 그러나 전혀 낡은 것이 아니다.
그녀들의 이야기들은 오히려 기성의 질서에 젖어 있는 자들은 적대감을 느낄 정도의 신선함, 구분 짓기 좋아하는 자들이 놀랄 정도의 대범함을 보여준다. 그녀들이 '경계'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라는 경계 중에서도 가장 굳건한 경계를 사이에 두고 그녀들이 무너뜨리고자 헀던 것 ─ 조한혜정의 표현을 빌리자면 '낙후된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 ─ 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들은 스스로 '번역자'를 자임한다. 남성과 여성의 사이에서 양자의 언어를 번역하고, 또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식민지와 제국주의의 사이에서, 근대와 탈근대의 사이에서 두 세계를 번역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바이링궐'로서 그녀들은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유연하다. 적의 무기에 대항하여 또다른 무기를 들고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복종이 저항이고, 저항이 복종인 듯한' 실천, 적의 언어를 환골탈태해서 깊은 내부에서 적을 찌르기 위해 사용하는 비법"(p. 61)으로 상대를 '낙후'시킨다. 그녀들이 희망하는 '다중심성의 세계', '탈근대를 향한 모험'은 이처럼 대립과 반목이 아니라 소통과 환대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바이링궐', '번역자'를 자임한다는 말은 그녀들이 바로 '소통'을 매개로 차이를 무너뜨리고 나아가 '평등'이라는 단순하고도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겠다는 선언이다. 그리하여 그녀들이 경계에서 말할 때, 그녀들은 창과 창을 맞부딫치며 불꽃을 피워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열정의 용광로로 창과 창을 녹이는 것이다.
식민 모국에서 태어난 학자가 식민지 하에서 억압받은 여성들의 용기에 감화되며, 50줄에 접어든 '어머니'들이 '자식'들의 세상에 뛰어드는 것은 바로 그러한 행위이다. 특히나 우에노 치즈코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이 책의 가장 감동스러운 부분 중의 하나였다.
"옛 '위안부' 할머니들이 국가에 실망한 나머지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국적을 이탈하기로 선언했다는 보도에 나는 섬뜩 놀랐습니다. '래디컬'이라는 말은 이 분들에게 헌정합시다. 여기에서 말하는 래디컬이란 급진적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근본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경에는 위로부터 넘는 방법과 밑으로부터 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 두 국가에 줄곧 배신당해 온 할머니들이 내놓은 국적 이탈이라는 래디컬한 화답은 여자가 온 몸을 내던져 국적을 넘는 '밑으로부터의 월경'입니다. 이 할머니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어 다행이라고, 나는 당신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I am proud of you), 일본인 여자인 내가 말하면 안 될까요."
─ 우에노 치즈코의 '세 번째 편지' 중에서
우에노 치즈코는 자신이 위안부 문제를 건드리자 한국의 학자들이 "'피해자의 자매'로서의 입장뿐, '가해자의 딸'이라는 자각은 없다"는 비판을 가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국가를 초월한 우에노 치즈코의 관점에 비판자들은 여전히 '국가'라는 근대적 잣대를 들이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주고 받는 경계 허물기는 그러나 국가나 성별, 세대와 같은 개인을 규정하는 모든 '이름'들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자신만의 이름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서로의 '오리지널리티'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다중심성의 세계로 향하는 길이다. 그러한 길은 국가 간의 경쟁, 남성과 여성 간의 차별, 세대 차이 등으로 승자와 패자가 구별되며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나누어지는 세상을 넘어서는 '모두가 승리하는 게임'을 하기 위한 길이다. 그러한 길로 접어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국가나 성별 등의 잣대로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사실은 '모두가 지는 게임'에 포섭되는 것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와 '너희들'은 다르다는 것, 그러나 또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와 '너희들'도 결국은 같은 존재이고 '우리들'과 '너희들' 사이에도 다른 점이 있다는 것, 그리하여 결국 중요한 것은 결국 '각자' 즉 '오리지널리티'가 된다. '우리'를 엮는 근대적 규정들, '너희들'을 나누는 획일적 잣대들을 넘어서서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단일한 중심성의 위계를 낙후시키는 길이다. 남성들의 세계와 맞서 싸웠던 페미니스트였던 두 여성학자는 단순한 적대적 페미니스트를 넘어서서 인간과 사회를 논하는 '휴머니스트'로 거듭난 듯 하다. 그녀들이 상상하는 세계는 남성의 세계도 아니요, 여성의 세계도 아니요, 한국의 세계도 아니고 일본의 세계도 아니다.
그러한 세상으로 향하는 길은 결국 모두를 포섭하는 거대한 '마을'을 만드는 일이다. 몽상적이고 낭만적인 이 일을 두 여성은 현실에서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경계에서 말할 때, 그것은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결국은 동시에 그녀 자신들이 기반하고 있는 경계 사이의 영역을 무너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세상이 올 때까지는 그녀들처럼 누군가는 계속 경계의 사이에서 부유해야할 것이다. 그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떠돌아야 할 것이다.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지만 그것은 결국 다른 모두를 고독함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의로운 길이기도 할 것이다. 그녀들이 걷는 여정은 그래서 퍽이나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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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말한다 - ![]() 우에노 치즈코.조한혜정 지음, 사사키 노리코.김찬호 옮김/생각의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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