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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1월, 4년마다 혹은 5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민주주의의 축제(?)'와는 관계 없이 각 대학교에서는 총학생회장 및 자치단위 학생회장을 뽑는 선거가 매년 열린다. '학생권력'이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던 당시의 선거가 어떤 양상으로 펼쳐졌었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른다. 국가권력과 학생권력, 역사 속에서 아마도 두 권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동등하게 취급되는 듯도 하다(적어도 최근까지는 그러했다). 그렇다면 당시의 총학생회 선거에는 '작은 대선'이라는 모순적인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학생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정치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리고 지금의 대학생은 그러한 권력을 쥔 학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우리는 '88만원'에 허덕인다는 학생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다만 나는 학교를 다닌 짧은 기간 동안 여전히 일견 남아있는 그 역사적 주체 형성 과정의 편린들을 조금은 살펴 볼 수 있었고, 또 시대가 변화화면서 반동적인 움직임이 소위 '대세'가 되는 것도 볼 수 있었을 따름이다.

이번 우리학교 총학생회 선거에는 총 6개 선본이 경쟁을 하고 있다. 지난 2년 간 총학생회를 장악해서, 말하자면 세력화된 선본도 있고 우석훈이 언급한 바 있는 '생태 선본', 그리고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속해 있는 선본도 있다. 나는 학교를 잠시 떠나 있지만 그래도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이기 때문에 (물론 외부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처지임에도) 관심 있게 지켜 보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 관련 홈페이지(yonseivote.com)을 운영하고 있어서 온라인 상에서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는 각 선본 별로 게시판이 만들어져 있는데 내가 처음 중앙선관이 홈페이지를 들어갔을 때에, 다른 모든 선본의 게시판에는 중앙선관위의 공지사항과 결산공고만 올라와 있는 반면, YOU 선본과 36.5선본에만 질문이 하나씩 더 올라와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YOU 선본의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 "YOU는 운동권인가요" 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있고, 게시물을 클릭하면 "제목이 곧 내용입니다" 라고만 되어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운동권인가요"라고만 물으면 어쩌자는 겐가? 그런데 묘하게도 이 한 줄짜리 질문만으로도 어감이 와닿는 것이다. '운동권'이라는 3음절짜리 단어 자체가 '제목이 곧 내용'이라는 말처럼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YOU 선본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이에 대해 비교적 길게 답변을 해 놓았는데, 요지는 학생과 20대가 처해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사회 운동이 필요하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운동은 긍정하고 단, 사회적 불합리나 정권과 연계된 운동이라면 그것은 '필요'하지 않거나 '우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은 이 질문은 "너는 빨갱이냐" 라고 묻는 것과 같은 느낌이어서 나는 상당히 불쾌했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YOU 선본 사무국장의 답변 아래에 달린 댓글, "위에 분 말이 기신데... 한 마디로 운동권입니다". 운동권이냐, 아니냐를 학생의 정치적 위치에 대한 스펙트럼의 문제로 본다면 단 '한 마디로' 그 스펙트럼을 규정할 수는 없다. "운동권인가요?"라는 질문은 그래서 둘째로,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사고라서 불쾌하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속의 한 색깔을 빨간색 혹은 보라색으로만 보는 사고방식이다.

분명 학생운동이 국가권력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소위 말하는 '운동권'은 왜 더이상 환영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온 것은 무엇 때문일까? 순전히 여론몰이의 마녀사냥일까? 분명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동안 운동권은 실질적인 학생사회에 무관심했다. 학생을 대표한다면서 학생을 무시하는 모순적인 학생회는 더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운동권은 알 수 없는 도취감에 젖어 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맑스가 혁명의 주체를 노동자들로 보았다면 운동권의 학생은 그것이 바로 자신들이라 여겼던 것이다. 학생사회의 발전은 뒷전이거나, 관심 밖이었고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던 관심사는 사회의 전복, 권력의 장악 같은 것들이었다. 권위주의적 정권에 대항하던 학생 권력은 그 스스로도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으며 그 안에서 가장 소외되었던 것은 여성과,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학생'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운동 방식은 사뭇 거칠었다. 유연한 '전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학생사회의 요구를 빨아들여 사회에 풀어 놓지 못했고 무조건 전선만을 형성하는 가운데 대립만이 격화되었다. 극단의 갈등 양상 속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윈윈게임은 불가능했다. 애초에는 이런 방식이 통했다.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아마도 학생권력을 쥔 자들은 환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순전히 학생만의 힘은 아니었고 학생권력이 승리에 도취되어 기존의 낡은 관습을 버리지 못하는 동안 사회는 이러한 방식에 면역되어 갔다. 더이상 그들의 방식은 통용될 수 없었다.

운동권의 이런 고리타분하고 꼬장꼬장한 성격 탓에 진짜 학생들은 혁명적 전위 세력을 자처하는 또다른 학생들에게 질려 버렸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반동적으로 등장했던 것이 이른바 '비권'이었다. 그들은 운동권과 달리 깃발도 없고, 구호도 없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사회는 오직 학생사회이며, 학교 바깥의 영역은 금단의 구역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네거티브 전략으로 나갔다. 사실상 그게 전부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운동권과 다르다. 진짜 학생들을 위한 일을 하겠다." 는 것이 그들의 구호였다. 그러나 그 알맹이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무엇이 진짜 학생들을 위한 것인가? 그들이 학생들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허울 뿐인 구호를 부르짖는 동안 대학의 등록금은 날이 갈수록 치솟았으며 학교는 기업에 인력을 제공하기 위한 인력 공장으로 전락했다. 학교엔 더 좋은 시설의 도서관이 아니라, 번지르르한 커피 전문점과 기업의 후원금으로 지어진 삐까뻔쩍한 건물들이 들어섰다.

학생들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자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지만 다시 역설적으로 학내에서 학생들의 권력은 날로 약해졌다. 학교와 이사진의 입김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으며 그들은 기업의 후원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학생들로부터 등록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있는 방향으로 학교를 변화시켰다.

본질은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학생사회는 그 바깥의 사회와 떨어질 수 없다는 것. 신자유주의와 시장의 물결이 전 사회를 휩쓰는 동안 학생사회 홀로 섬처럼 존재할 수는 없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학생들로부터 낭만의 캠퍼스를 앗아 가고 정글의 캠퍼스를 안겨 주었으나 학교 바깥의 사회를 무시하는 학생회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럼 결국 다시 대안은 운동권인가? 

다른 방식의 운동이 필요하다. 기존의 운동권은 바깥의 사회와 학생사회를 연계하지 못했다. 그들은 학생사회의 실권을 쥐는 순간 학생사회로부터 떨어져 나와, 바깥 사회에 투신했다. 그러는 가운데 학생사회는 또다른 의미로 '섬'이 되었던 것이다. 학생사회의 문제는 운동권처럼 외딴 섬을 홀로 놓아 둔 채 항해를 떠나는 것으로도, 비권처럼 섬 안에 틀어 박혀 있으면서 아웅다웅 하는 것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 새로운 운동은 이 섬에 다리를 놓는 것이어야 한다. 학교 바깥의 사회에 학생사회의 문제와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다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기존의 운동권과 비권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다. 빨간색과 보락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던 학생사회에 일곱 빛깔 총천연색을 수놓는 일이다.

기존의 선입견은 학생사회를 고립시켜 왔다. 학생회가 조금이라도 사회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그들은 '운동권'이라고 규정되어 비토되었다. 반대로 학생회가 학교 안에 웅크리고 있는 동안 학생사회는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해답은 그 사이에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의 선본이 선거판에 뛰어든 것은 그래서 일견 좋은 신호로 받아들일 만 하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양 극단의 스펙트럼에 머물러 있는 선본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본래 저울은 단 한 번에 균형을 잡지 않는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가운데 적절한 지점을 찾아 멈추는 것이다. 학생사회가 양 극단을 오고가는 것도 절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한 긍정적인 움직임일지 모른다. 학생사회가 곧 그 지점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덧.

이 글은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 쓰기 시작하여 선거 결과가 나온 지금에서야 마무리되었다. 개표 결과 위에서 언급한 YOU 선본이 당선되었다. YOU 선본이 운동권이라고 상당 부분 비토당했던 것은 외부 조직과의 연계 문제 때문이었다. 그들 스스로는 부정하고 있지만 YOU 선본이 한대련 소속이 아니냐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그들의 공약 중의 하나가 민노당의 학생 정책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민노당과의 관련성도 상당 부분 추궁당했다. 아마, 정후보가 민노당 소속이라고도 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한 사실 관계야 내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정책이 비슷하다는 점으로 특정 정당과의 직접적인 연계를 추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추측이 아닐까 싶다. 선본의 사무국장이 한대련에 가입되어있다는 사실은 명백히 허위이고 어떠한 정책 연계도 없음을 밝혔으므로 한대련과의 관계를 추궁하는 것도 더이상은 나오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추궁들 또한 여전히 운동권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듯 하다. 사회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그면 무조건 비토하고 보는 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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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09/12/10 20:47
운동권이라는 말도 웃기고 '비'권이란 말도 웃기고,
안과 밖을 가르고.. 제목 (냉무) 질문 하나로 궁금한 게 다 해결되니..허허허허허허.
생각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또 다른 사회가 안을 지배해갔죠. 돈의 사회.
wrote at 2009/12/11 10:08
저희 학교는 06년에 운동권에 데었고 07년엔 비권에 데었죠.
06년 학생회장은 단식에 총학생회의에 학교 본관 점거에 많은 일을 했지만 성과가 없었고
07년 학생회장은 거의 딱 이명박이랑 비슷했죠.
한 건 없고, 비리는 많고, 대화의 통로는 차단하고.
그러다가 한 방에 뭐 좀 해 보려고 학생회칙 개정을 추진했지만 총투표 결과 부결되고.
그렇게 두 번 데인 뒤로는 그래도 그나마 정신을 좀 차리고 있는 것 같아요.
sungnyang 
wrote at 2009/12/11 17:12
학생을 위한 일을 하겠다. 정말 학생을 위한 일은 무얼까?
다른방식의 운동- 결국 4학년이 되어서는 꿈이든 뭐든 취업에 휩쓸리고 많은 대다수의 학생들, 아니면 일찌감치 고시의 길로 접어든 사람들,
학생회에 바라는 것으로 고시반 시설 개선과 지원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 취업을 위한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을 들을 때
진짜 학생을 위한 학생회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사회와 학생을 잘 이어준다는 개념이,
진짜 고시반 확충이나 스터디룸 증설 등 취업을 위한 대학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사회에 나가서 좀 더 나은 인재가 될 수 있도록 고등학교가 아닌 '대학'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
'학문'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건지.

사실 국부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어쩐지 씁쓸해서-ㅎ
우리학교 이번 선거는 선거과정 문제로 재투표했는데, 그 과정서 유효투표율 문제로 또 문제가 되고 있어-암튼- 것보다
공약을 보니 뭐 등록금(언제나처럼), 대동제 개최, 동아리지원 확충, 좋은수업만들기(수강신청문제등)
취업 후 지원 신설(학습심화과정), 열람실 및 자치공간 확보
소통
등. 뭐 취업지원이냐 기타 복지확충이냐, 사실 두 개 다 가지고 가는 게 맞는 거겠지.
wrote at 2009/12/12 13:42
물론 시설 개선 같은 일들도 학생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 그런데 보통은 시설 개선이란 게 학생들의 요구사항에 의해, 혹은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자나. 학생으로부터의 투입 측면이 전혀 없는 거지. 그냥 학생회에서 쿵짝쿵짝 해가지고는 뚝딱뚝딱 시설 개선하고 자신들의 성과라고 자랑하는 식이니까.

취업 문제도 취업 자체에만 매달리면 인문학 계열 같은 경우는 확실히 지원이 소홀해지겠지. 그렇다고 취업 문제는 학생들이 가장 강력하게 해결을 원하는 것 중에 하나니까 마냥 무시할 수도 없고. 취업이냐, 학문이냐도 이분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학문을 하면서도 취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 이런 문제는 확실히 학생사회 내부에서만 아웅다웅 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 학교 밖에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는 거고.
sungnyang 
wrote at 2009/12/13 02:04
학문을 하면서도 취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건 어떤 것이려나.
지금 학생인 나의 시각으로서는 잘 떠오르지 않는데,
현재 상태로도 가능한 걸까 아님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걸까.
wrote at 2009/12/14 08:18
'취업'이라고 하니까 학문과는 너무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런 거지. 실용적이지 않다고 하는 학문을 대학에서 하고서도 먹고살 걱정 하지 않을 수 있는 것. 분명 그랬던 시절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니까. 이건 뭐 단순히 일자리 개수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일자리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wrote at 2009/12/14 23:16
사실 개인적으로 좌우파 막론하고 운동권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냉전반공주의에 가까운 좌파 운동권 알레르기를 보고 있으면 한심한 것은 사실이죠-
최장집 선생님 말씀대로 정치적으로 표를 통해 자신을 조직하는 것도 좋은 방안인 것 같습니다. 조직화된 20대의 표를 통해 등록금 문제 해결을 압박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것 같네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학교 밖의 구조적 문제까지 포착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wrote at 2009/12/15 08:53
우파 운동권이 학내에 존재했던 적이 있던가요? '우파 운동'이라고 하면 저는 파시즘이나 스킨헤드가 떠오릅니다만.. 뭐 '반운동'도 운동이라면 운동일 수도 있겠네요 ㅎ

또 저는 굳이 표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저는 투표로만 하는 정치에는 큰 중요성을 두는 편은 아니라서. 다만 제가 생각한 건 표를 통해서든 다른 방식을 통해서든 담론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한다는 겁니다. 과거 운동권은 적어도 담론을 형성할 능력은 있었죠. 그 담론이 자신들의 문제와 동떨어진 것들이 많아서 그렇지만. 저는 사회에서 20대 문제를 20대가 제기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을 채워 줄 수 있는 학생회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socio님 블로그는 이글루 회원만 댓글을 달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떡하니 트랙백만 걸어 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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