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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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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은 내 기억에, 어렸을 때부터 그 제목을 들어왔던 것 같다. 내 말은 단지 제목만 들어 왔었다는 거다. '호밀밭'이란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는 왠지 이 소설이 한가롭고 평화로운 전원적 풍경을 담고 있을 거란 생각을 갖게 했었다. 그러니까 영 시시콜콜한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다가 우연히 알라딘에서 책 소개를 보았던 것 같은데 '방황'이란 단어가 나를 확 끌어당겼다. '방황', '방랑', '혼란', '타락'과 같은 주제들은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깃거리다. 특히 그것이 젊은 시절의 이야기라면 더욱더 그렇다. 어쨋든 나는 아직 젊디 젊고 그런 이야기라면 나의 이야기처럼 읽거나 가까운 친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읽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둘 다에 해당했다. 홀든 콜필드는 나 같기도 했고 내 친구 같기도 했다.


홀든 콜필드 이야기


「저…… 그러니까, 인생은 운동경기와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규칙에 따라서 시합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아주 좋게 대해주셨어요. 화를 내신다거나 때리지는 않으셨다느 뜻입니다. 인생이란 시합과 같다는 말씀만 계속 하셨어요.」


「인생은 시합이지. 맞아, 인생이란 규칙에 따라야 하는 운동 경기와 같단다.」


「예, 선생님.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p. 18~19)


여기에서 이 짤막한 대화가 끝났더라면 나는 초반부에 그냥 책을 덮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규칙에 따라야 하는 시합에 비유하는 꼰대같은 말에 동의하는 놈은 별로 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대화에 콜필드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의 한 꼭지가 이어진다.


"시합 같은 소리하고 있네. 시합은 무슨. 만약 잘난 놈들 축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 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측에 끼게 된다면, 잘난 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편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시합이 되겠는가? 아니, 그런 시합은 있을 수 없다." 


이 때부터 난 콜필드란 이 삐딱한 친구가 맘에 들기 시작했다. 정확히 그는 내가 마음 속으로 하고 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어보기로 했다. 

콜필드란 녀석이 하는 이야기라고는 누구 욕이거나 불만 투성이인 소리 뿐이다. 아는 사람은 물론이고, 처음 만난 사람, 심지어는 그냥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닥치는대로 욕을 한다. 역겹다거나, 지겹다거나. 도대체 맘에 드는 것이라고는 없다. 그가 좋아하는 유일한 '현실적 대상'인 그의 어린 여동생이 “오빠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 싫다는 거야?”라고 물을 정도다. 그의 대답이라고는 죽은 사람 얘기 뿐이다. 그에게 현실이란 것은 욕설이나 불만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위선과 허위의식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냉소를 금치 않는다. 

그가 말한 장래희망이란 것도 일면 환상적─현실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이다. 여느 십대 청소년들이 꿈꾸는 무슨 대학, 무슨 직장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 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벼랑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벼랑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p. 229 ~ 230)


그가 꿈꾸는 것은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 피비가 다니는 학교에 <이런 씹할>이란 낙서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그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한다. 아이들의 순수가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일. '호밀밭의 파수꾼'은 실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은유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벼랑 끝에서 구제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 콜필드 자신이다. 그가 마지막에 피비를 만나기 전에 찾아갔던 앤톨리니 선생은 그런 홀필드를 벼랑 끝에서 구제하려는 '파수꾼'이다. 앤톨리니 선생이 홀필드에게 하는 조언은 사실 책을 읽으며 홀필드의 방황에 공감하던 독자들에게 날리는 백신 같은 것이기도 하다. 현실과 담쌓고 환상 속에 살며 현실에서는 방황하는 콜필드와 같은 청년적 마인드를 가진 자들에게 현실로 돌아오라고 하는 일침. "우선 학교로 돌아오라"는 말은 아마 그런 말일 터. 유난히 선생님들의 조언에 치를 떠는 콜필드가 앤톨리니 선생님의 조언에는 별다른 반감을 품지 않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톨리니 선생의 조언을 듣고 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가서 콜필드는 조금 변한다. 콜필드는 잠들어 있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앤톨리니 선생을 발견하고는 그가 변태일지도 모른다며 뛰쳐 나오는데 뒤에 가서는 결국 “설사 선생이 변태라 하더라도 내게 정말 잘해 준 것만은 확실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변태라고 온갖 악담을 퍼부었을 예전의 콜필드에서 조금은 나아간 모습이다.

앤톨리니 선생의 집에서 뛰쳐 나온 뒤 콜필드는 역시 여기저기 방황을 하다가 서부로 떠날 것을 결심한다. 역시 뉴욕의 현실은 그의 이상을 방해하기만 하며 그의 성에 차지도 않는다. 떠나기 전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피비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려는데 피비는 자기도 오빠를 따라가겠다며 울기 시작한다. 콜필드는 너는 자기와 같이 갈 수 없다며 피비를 나무라지만 피비는 도리어 화만 낼 따름이다. "난 아무 데도 안 갈 거야. 마음이 변했어." 피비는 결국 콜필드의 마음을 돌려 놓는다.


콜필드의 미래는?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콜필드는 그 후 아마도 정신과인 듯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는 말을 할 뿐 이후에 펼쳐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콜필드는 방황을 완전히 끝냈을까? '현실'에서 살게 되었을까? 이러한 질문은 무의미해 보인다. 콜필드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질문들이 어리석다고 말하며 독자의 궁금증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듯 하다.


"많은 사람들, 특히 이 병원에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이번 9월부터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인지를 연신 물어대고 있다. 정말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질문이 있을까? 실제로 해보기 전에 무엇을 어ㄸ허게 하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야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이다." (p. 278) 



책을 읽으면서 홀든 콜필드가 나같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고전'이 된 것은 아마 수많은 청년들이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어디 청년 뿐이랴! 하지만 사실 나는 궁금했다. 방황하는 삶의, 현실을 등지고 순수를 지키겠다는 파수꾼이 되고자 하는 이상을 꿈꾸는 삶의 결말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등장하는 요조는 끝내 현실로부터 버림 받았었다. '순수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콜필드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그렇게도 증오했던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모리스 같은 자식들도 그립다고 고백한다. 수다쟁이처럼 모든 말을 하게 되면 이렇게 그런 자식들도 그리워지게 되는 거라면서. 이는 어른이 되기 위한 체념일까?

콜필드가 서부로 떠나며 잘 살았다면 어땠을까? 사실 그게 내가 바라던 행복한 결말이었다. 그 결말이 아니라면 남은 것은 비극 뿐이었다. 『인간실격』의 결말은 그래서 퍽이나 맘에 들었다. 결국 정신 병원에 갇혀 '실격'된 인간이 되어버린 요조. 

그래서 나는 아직 콜필드다. 현실과 꿈을 분리해 볼 수 밖에 없는 방황하는 콜필드. 그래서 어딘가 모르게 이후 콜필드가 현실과 타협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도 남는다. 어쩌면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혁명가적 기질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로부터의 도피, 아니면 혁명! 그 외엔 비극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회의주의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품고 꿈을 꾸는 혁명가인지도 모른다. 


 .  사실 현실의 내 모습은 그렇지 않다. 일면 현실적이도 하며 더러운 것을 잘 참고 견디는 인내(?)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냥 현실로부터 도피─어차피 혁명을 포기할 거라면─해버리는 콜필드를 더 강하게 원했는지도 모른다. 아예 방황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콜필드 말이다! 결국 소설은 현실에 대한 대리체험이거나 대리만족이기도 하니까.



호밀밭의 파수꾼 - 8점
J.D. 샐린저 지음/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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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ckboy 
wrote at 2009/10/30 07:52
콜필드라는 이름은 기억이 안났는데, 피비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아 피비!! -_-ㅋ
난 왜 여동생만 기억하지;;

여튼,

꿈을 계속 꿉시다. 꿈 꾸는 자는 너무 다른 현실과 타협할 수가 없는 듯해요.
wrote at 2009/10/30 08:21
아무래도 피비란 이름이 기억하기는 더 쉬운 것 같네요.
꿈을 꿉시다!
wrote at 2010/09/01 10:59
넓고 깊으신 서평 잘 읽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쉐브랑코 님 서평을 링크해서 다른 분들과 나눌려고 하는데 괜찮을런지요. 부디 너그럽게 허락해 주세요. ^^*
http://blog.daum.net/hjandej/6026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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