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펭귄
감독 임순례 (2009 / 한국)
출연 문소리, 박원상, 최규환, 손병호
상세보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 같은 것, 사실은 매우 지루한 소재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24시간 자체가 일상인데 더 들을 이야기가 아직도 남아 있을까? 사는 것도 지겨워 죽겠는데 그 이야기를 영화에서까지 보라니!! 그래서 우리는 블록버스터를 찾는지도 모른다. 평소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대리 경험해보고 싶어하니까.

다시 한 번 묻는다. 매일의 '일상'을 살아간다는 우리에게 영화가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없다'고 대답하는 이들은 임순례 감독의 작품 <날아라 펭귄>을 보시길 권한다.


제작 : 국가인권위원회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빛이 영사되기 시작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자막이 있었다. '제작 : 국가인권위원회'. 아니, 소소한 일상을 다로는 영화라더니 '인권'이라고? 영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인권'이라는 것은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 혁명 같은 역사 속의 거대한 사건들 속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혹은 자유민주주의니 하는 거창한 담론 속의 한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도대체 '일상'이라는 테마를 통해 어떻게 두 시간 동안이나 인권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일까? 

영화는 서로 연결된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열공엄마'의 등쌀에 밀려 학원과 학습지에 파묻혀 사는 승윤이, 넉살 좋은 성격에 예의바르지만 채식주의자에 술도 못해 회사 생활이 녹록치 않은 신입사원 주훈, 역시 예의바르고 넉살 좋고, 거기다가 고기도 잘 먹고 술도 잘하지만 담배들 핀다는 이유만으로 직장 상사들의 눈총을 받는 미선, 아이들과 아내를 외국에 보내고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 권과장, 뒤늦게 엄마와 아내가 아닌 자신의 삶을 찾고자 하는 송여사, 그리고 이런 아내에게 불만이 가득한 권 선생. <날아라 펭귄>은 이처럼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어, 도저히 '영화같다'고는 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로 영화를 구성한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영화 속 등장인물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 그래 저건 바로 내 이야기야!"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 그러나 그러한 공감대가 곧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엄마의 등쌀에 치여사는 아이를 보면서 마시기 싫은 술 억지로 마시고 피고 싶은 담배 맘대로 못 피는 신입사원을 보면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가장을 보면서 언제까지나 아내이기를 강요받는 노년의 여인을 보면서 우리는 불쾌함을 느낀다. 

이러한 불쾌함, 불편함은 사실 곧 우리 일상 자체의 불편함을 반영한다. 인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었음을, 나의 작은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억압적인 무언가를 강요하고 있었음을 영화는 '불편하게' 보여준다. 인권을 억압한다는 것은 부도덕한 독재자의 전유물이 아님을, 그렇다고 해서 일상의 인권을 침해하는 우리 주변의 그들이 또한 부도덕한 것은 아님을 영화는 보여준다. 인권의 침해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작고 미미한 영역에서 아주 작은 것들을 통해 이루어지며 영화를 통해 이를 자각한 우리는 불편해지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살고 계십니까?

영화가 제기하는 인권의 문제는 결국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다양한 취향과 기호와 가치를 가진 개인들이 사회로 편입되었을 때 그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크든 작든 가족이란 사회 내에서, 직장이라는 사회 내에서,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내에서 우리는 대체 누구의 기준으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소방관이 되고 싶지만 엄마는 수학과 영어를 강요하고, 나는 고기도 싫고 술도 싫지만 직장은 이를 강요한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지만 사회는 유학을 강조하고, 나는 춤도 추고 싶고 운전도 하고 싶지만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은 이를 거부한다. 

한 개인이 지닌 다양성은 무시되고 사회는 개인에게 획일화된 잣대에 따라서 살 것을 강요한다. 자신이 선택한 삶은 가족들에게서 사회로부터 무시된다. 그러한 가운데 셜국 저 스스로가 살아가는 이유를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살면서도 그것이 강요된 삶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는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이것은 영화가 보여 주듯이 매우 일상적인 수준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인권의 문제이다. 

이는 사회적 문제일 수 있고 구조적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의 영역으로 침투한 이 문제는 결국 우리들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드는 동시에 가해자로 만든다.


해피엔딩? 언해피엔딩?

네 개의 에피소드 중 겉으로 보기에 두 가지는 해피엔딩이고, 나머지 두 가지는 말하자면 언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직장상사에게 시달리던 규환은 결국 상사와 화해하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던 노부부도 결국 화해한다. 그러나 엄마의 등쌀에 치여살던 승윤이의 이야기와 가족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혼자사는 권과장의 이야기는 별다른 '화해' 없이 끝이 난다. 감독은 '어려웠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사실 교육 문제와 기러기 아빠의 문제는 감독이 화해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문제다. 엄마가 승윤이를 그렇게 들들 볶지 않아도, 외국에 나가 있는 아이들이 아이비 리그 학교에 입학하거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승윤이는 결국 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크고 아이들이 아이비 리그에 입학한다고 해도 기러기 아빠의 외로움은 남는다.

이러한 점이 보여 주는 아이러니는 결국 일상의 문제가 사회적·구조적 차원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듯 하다. 자신의 아이가 학원에 다니면서 힘들어 하는 것 알면서도 학원을 보내게 되는 부모 마음이 편하기만 할까? 편치 않으면서도 보내게 되는 것이 학원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소한 일상이란 것도 결국커다란 구조 안에 포섭되어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결국 일상적인 수준에서의 고민은 무의미한 것일까? 우리의 일상이란 것이 결국 커다란 구조 내의 일부분일 뿐이라면 말이다. 일상은 변해도 구조는 변하지 않는 것일까? 

일상 수준에서의 이러한 자각은 분명 매우 중요하다. 일상의 수준에서 이러한 문제를 자각한다는 것은 결국 거대한 구조의 문제를 자신과 매우 밀접한 것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한다. 거대한 구조가 사소한 일상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구조니, 일상이니 하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문제가 거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간에 그것이 '자신'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영화가 보여주는 일상을 통해 느끼는 '공감대'는 불편하지만 중요하다.

영화가 열어 둔 두 가지 에피소드의 결말. 이는 결국 우리들의 몫이 되는 셈이다. 스스로 날지 못하는 펭귄인 우리들이지만 날 수 있게 하는 것도 또한 우리들이 아닐까?


날아라 펭귄 - 8점
임순례


 ※ 덧 1. 임순례 감독은 <우생순>이란 히트작의 감독이다. 찾아 보니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감독이기도 하더라.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내가 항상 보겠다고 하면서 보지 못하고 있는 작품인데 <날아라 펭귄>으로 임순례 감독의 작품을 접한 것을 계기로 조만간 봐야 겠다.

덧 2. 에피소드 중에 20대의 이야기가 있었으면 어땟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해서 남는다. 아무래도 내가 20대인 탓이 크겠지만 20대는 양면적이라는 측면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한 딜레마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대는 어쩌면 삶 속에서 가장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시기이다. 입시로부터 벗어나 있고 본격적으로 사회 속에 발 딛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 현재의 20대는 사회로의 '성공적인' 진출을 예비하는 데에만 치중하면서 아직 발을 들여 놓지도 않은 사회의 온갖 기준들을 스스로 내면화한다. '예비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이다. 결국 20대만이 누릴 수 있다는 그 청춘이 말살되고 만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장의 책임의식에 관한 문제는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러나 '예비 사회인'으로서 20대의 청춘을 말살하는 문제는 현 시점의 독특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름 :
비밀번호 :
홈사이트 :
비밀글 :
*1  *···  *84  *85  *86  *87  *88  *89  *90  *91  *92  *···  *297 
count total 305,102, today 0, yesterday 8
rss
I am
분류 전체보기
문화
독서일기
인물
요지경
gallery
news scrapped
허허실실
달력
«   2019/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